<초토의 시 8 - 적군 묘지 앞에서>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 공산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어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성격 관념적, 추도적, 인도적, 격정적
주제 적군의 묘지를 보며 느끼는 분단 현실에 대한 통한과 통일에 대한 염원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인이 6·25 전쟁 때의 종군 체험을 바탕으로 쓴 연작시 ‘초토의 시’ 15편 중 여덟 번째 작품으로, ‘적군 묘지’ 앞에서 적군 병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한 아픔과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3연에서 시적 화자는 적군 병사의 무덤 앞에서 느끼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 말하면서 적군 병사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라는 표현에는 애증을 초월한 이념 대립의 허망함과 생명의 존엄성이 짙게 배어 있다.
4~5연은 분단으로 인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내면화하면서 갈라진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에 대한 바람을 나타내고 있다. 시인은 분단의 상징물인 휴전선을 바라보면서 민족의 고통을 절감하며, 적군들의 ‘풀지 못한 원한’을 그들만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는 일체감을 보여 준다.
마지막 6~7연에서는 민족의 통일에 대한 바람과 분단 현실의 아픔을 나타내고 있다. 가로막힌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구름’과 남과 북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는 상황(‘포성’)을 대조적으로 제시하여 분단 현실의 비극적 모습을 부각하고 있다. 또한 ‘은원의 무덤’이란 표현에는 동포로서의 사랑과 적으로서의 원한이 교차하는 화자의 모순된 감정과 동시에 전쟁의 원한과 상처를 교훈 삼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깨달음, 그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2연의 화자의 행동에 나타난 의미는?
화자가 적군의 묘지에서 그들의 시신을 묻어 주는 행위는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상황에서도 한 민족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사랑과 연민의 감정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즉, 적군의 시신을 거두어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는 행위는 이념적 증오를 초월한 화해와 포용력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시어의 상징적 의미
*초토(焦土) :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 폐허가 된 전쟁터, 동족상잔의 비극적 상황이 벌어진 우리 국토
*무주공산(無主空山) : 적군의 묘지, 비무장 지대
*구름 : 통일에 대한 화자의 염원이 투영된 대상, 화자의 처지와 대조를 이루는 자유로운 존재
*방아쇠, 포성 : 전쟁과 분단 현실의 모습
○ 이 시에 나타난 현실 인식과 배경 사상
이 작품은 6·25를 겪은 시인의 체험에 바탕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라는 허상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동족상잔의 역사적 비극 앞에서 이 시의 화자가 느끼는 아픔은 너무 큰 것이어서, 화자는 격정적 어조로 자신의 심정을 직설적으로 토로한다. 현란한 시적 기교보다는 민족애, 화해, 용서 등의 관념이 화자에게 더 앞선 까닭일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화자는 시인 자신이기도 하고, 실향민일 수도 있고, 더 크게는 동족상잔의 상처를 안은 한민족 전체일 수도 있다.
다른 전쟁시가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느낀 분노나 적개심을 주로 표현하고 있음에 비해, 이 시는 민족애와 기독교적 윤리 의식에 바탕을 둔 휴머니즘의 토대 위에서 분단 현실에 대한 통한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그려 내고 있다. 즉 이 시의 화자는 전쟁이 남긴 적군 병사의 무덤을 보면서, 전쟁과 분단 현실에서 오는 우리 민족 전체의 아픔을 자기화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랑과 화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전후 시(戰後詩)와 모더니즘
한국 전쟁은 우리 민족의 삶을 황폐화하였다. 비극적인 체험과 상흔은 생존의 어려움과 회의를 안겨 주었으며, 패배와 허무주의를 심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여러 주제로 문학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박인환, 김규동, 조향, 김수영 등의 시 : 현대 도시 문명의 문제점들을 당시의 상황과 연결시켜 짙은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표출함.
*유치환, 구상, 정한모, 박남수 등의 시 : 직접적인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생명 의식, 민족애, 평화를 노래함.
*김경린, 김춘수, 김현승, 전봉건 등의 시 : 언어의 지성적 운용(運用)을 통해 인간 존재와 문명에 대해 탐구함
[네이버 지식백과] 초토의시 [焦土─詩]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재교육 해법문학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24XXXXX5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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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의 시 1(구상)>
출전 『초토의 시』(1956) 『초토의 시』는 작자의 존재에 대한 기독교적 윤리의식과 6·25를 통해 겪게 된 민족의 비극과 그 고뇌를 세계사적, 전인류적 문제로 인식하여 드러내준 시집이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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