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의 시 1(구상)>

출전  『초토의 시』(1956)

『초토의 시』는 작자의 존재에 대한 기독교적 윤리의식과 6·25를 통해 겪게 된 민족의 비극과 그 고뇌를 세계사적, 전인류적 문제로 인식하여 드러내준 시집이다. 그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체험공간을 생명부재의, 세계 역사의 초토로 파악하여 그 비극적 참상을 고발하고 구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연작시 각 편은 모두 독립된 한 편의 시이지만, 15편 전체가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 내면의 윤리의식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초토: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 혹은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진 상태.

 

 

<초토의 시 1>

하꼬방 유리 딱지에 애새끼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체니[少女]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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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전란의 폐허 속에서 갖는 조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

 

○ 시적 화자의 분신, ‘그림자’
이 시에서 ‘그림자’는 3연과 6연에 두 번 등장하는데, 3연에서의 ‘그림자’는 울상을 지으며 화자의 뒤를 수동적으로 따르지만, 6연에서의 ‘그림자’는 웃으며 앞장을 서고 있다.
‘그림자’를 화자의 분신으로 본다면, 이는 민족의 현실에 대한 화자의 태도가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좌절하고 절망하던 화자는 '잿더미' 속에서도 피어나는 '개나리'와 '체니'의 싱그러운 미소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이러한 희망은 화자의 분신인 '그림자'를 웃게 만들고 앞으로 나서게 만든 것이다.

 

○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시상의 전환

하꼬방에 붙어 있는 애새끼들의 모습은 불쌍하며 참혹하다. 이미 깨어진 유리 조각들을 간신히 이어붙인 유리 딱지 역시 잿더미와 다름 없다. 하지만 화자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해바라기와 같은 생기를 발견하며, 망울진 개나리와 체니의 미소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이미지는 참혹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밝음의 의지를 보여 준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자 그림자마저 울음을 버리고 웃고 있는 것이다.

 

○  ‘하꼬방’의 의미
1연에 사용된 '하꼬방'을 '판잣집'으로 고쳐서 쓰는 경우가 있다. 하꼬방이라는 말이 주는 비속함 때문이다. 하지만 하꼬방과 판잣집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판잣집은 그저 집을 이룬 재료 이외의 의미가 없지만, 하꼬방은 일본어의 하꼬(상자)와 방(房)의 합성어로 한국 전쟁 전후(前後)의 우리 현실을 상징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하꼬방은 땅을 파고 미군들의 레이션(야전 식량) 상자, 생선 상자 등을 주재료로 하여 벽을 세우고 지붕을 만든 열악한 주거 형태이다. 문짝 대신에 가마니를 걸쳐 놓고 지붕엔 돌멩이 몇 개 눌러 놓고 방안 벽에는 미군 잡지들이 원색으로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시인은 바로 이러한 하꼬방을 제시함으로써 전쟁 직후의 피폐한 삶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체니［少女］의 미소’의 의미
5연에 나타나는 '체니'는 언덕을 내려 달리며 앞니 빠진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다. '少女'라는 한자어가 함께 붙어 있는 이 체니의 나이는 몇 살쯤일까? 앞니가 빠진 것을 젖니가 빠진 것으로 해석하면 8, 9세 안팎의 어린아이가 되며, 아이의 미소는 천진난만한 웃음이 된다.
그런데 '체니'는 함경도 방언으로 '처녀'라는 뜻을 갖고 있다. 만일 체니를 제법 나이가 든 처녀라고 본다면 체니의 빠진 앞니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상징한다. 그리고 체니의 미소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초극적인 웃음이 될 것이다. 잿더미 속에서 꽃망울을 피우는 개나리와 더불어 고통의 폐허속에서 끌어 올리는 희망의 웃음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초토의시 [焦土─詩]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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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의 시 8 - 적군 묘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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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의 시 10 - 휴전 협상 때>